입력 : 2016.01.01 08:05
인구 63만명의 제주도가 세계 첨단 기술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며 스마트 도시(Smart city)로 변화하고 있다.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쓴 ‘제3차 산업혁명(the third industrial revolution)’에 나올 법한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의 보급률을 100%로 높여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제주도는 ‘테스트베드’가 전략이었다
제주도가 친환경 최첨단 기술의 테스트베드(시험 무대)라는 길을 걷게 된 것은 감귤과 관광 사업만으로는 지역 경제의 성장이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 ▲ 르노삼성의 준중형 전기차 ‘SM3Z.E.’가 풍력발전소를 배경으로 정차된 모습. /르노삼성 제공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주도민의 고용 질은 떨어진다. 제주도 상용근로자의 비중은 36.2%로 전국 15위로 하위권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일용근로자 비중은 8.2%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고용계약 기간이 1개월에서 1년 미만인 임시근로자 비중(19.0%)도 전국 9위로 높은 편이다.
- ▲ 메르스 사태에 따른 제주지역 경제적 영향 분석 과정 /제주발전연구원 제공
제주발전연구원이 발표한 ‘메르스 사태가 제주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최고조였던 지난해 6월 한 달간 제주지역의 생산효과는 1782억~2066억원, 부가가치효과는 894억~1054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루에 수십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제주도가 찾은 돌파구는 ‘글로벌 에코 플랫폼 사업’이라고 이름 붙여진 미래 에너지 산업의 테스트베드다. 풍력과 태양광에너지를 생산해 산업용·가정용 전기를 공급하고 전기차를 운행하는 등 제주도를 신에너지 사업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 ▲ 제주도와 LG그룹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글로벌 에코 플랫폼 제주 사업의 개념도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2030년까지 전기차도 37만7000대로 늘려 전기차 보급률 100%를 달성하고 전기차 급속충전소도 1만5000개로 확충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배터리 재활용, 전기차 잔여전력 재판매, 배터리 리스(장기임대) 등 전기차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부대사업도 진행한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에너지 신사업의 허브라는 비전이 제주도의 새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 테스트베드의 최적지, 왜 제주도인가?
제주도는 태생적으로 전기차에 적합한 입지와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다. 100km 정도의 도로 거리, 따뜻한 기후(추운 지역의 경우 배터리의 효율이 떨어져 운행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 저속 도로 환경 등의 조건은 전기차 테스트베드로는 최적의 궁합이다.
- ▲ 제주도내 전기차 충전소를 표시한 지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 정보시스템 캡처
제주도는 섬이지만 전기차 충전과 풍력,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한 전력 사용과 각종 측정, 시험설비 사용,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위한 통신사용에 걱정이 없다. 제주도는 육지와 연결된 전용 통신, 전력 해저케이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제주-해남, 제주-진도 해저케이블은 각각 연 30만KW와 연 40만KW의 전력을 제주도에 공급한다. 또 현재 태양광과 풍력 등에서 연 271메가와트(MW)의 전기를 생산한다.
- ▲ 해저케이블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왼쪽), 풍력단지의 모습(오른쪽) /조선DB
빠른 통신망은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파악, 분석, 제어하는 스마트그리드 기술의 핵심 기반 시설이다. 또 전기차를 매개로 한 빅데이터관리센터 건립 등 다양한 연관산업 육성에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제주도가 전기차 구입비, 세금감면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이 테스트베드 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다”며 “특히 제주도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 중국 시장을 노리는 업체들이 제주도 진출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 전기차 지원 위해 법까지 바꿨다…구매자에 최대 2900만원 지원
제주도는 2014년 전기차 육성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정부, 학계, 연구소 등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도지사 직속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 구축 태스크포스(TF)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전기자동차 보급 촉진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 공포해 전기차 활성화를 위한 각종 혜택을 법제화했다. 조례에서는 제주도 출자·출연기관, 민간기업·단체 등이 업무용 자동차로 전기차를 우선적으로 사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제주도의 전기차 사업은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전국에서 판매된 전기차 6220대 중 38%(2263대)가 제주도에서 운행되고 있다. 제주도는 전기차 보급과 육성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월 세계전기자동차협회로부터 ‘세계 친환경 교통정책, 전기차 모범도시상’을 받았다.
제주특별시도 관계자는 “전기차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미국, 일본, 노르웨이 등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제주도의 지원금 규모는 파격적인 수준”이라며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비싼 가격은 전기차의 단점이지만 지원금을 받을 경우 1000만~2000만원대에 전기차를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 글로벌 기업들 러브콜 “제주도 지리·인프라·정책지원 훌륭”
제주도의 우수한 인프라와 정책적 지원은 글로벌 전기차·에너지 기업들의 ‘러브콜’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진출을 선언한 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도 한국의 판매 거점을 제주도로 낙점했다. 테슬라는 내년도 보급형 모델인 ‘모델E’를 제주도에 출시한다.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BMW, 닛산, 토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제주도에 전기차를 보급하고 있다.
- ▲ 지난해 12월 3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프랑스 파리 소재 르노 본사를 방문해 제롬 스톨 르노 부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또 제주도는 LG그룹과 미래 에너지 사업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한다. LG그룹은 제주도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및 송배전 시스템과 전기차 운용 시스템에 대해 2018년까지 3조원, 2019~2030년 추가로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제주도의 풍력 에너지 중심지인 제주김녕풍력발전소는 현대중공업, GS 등과 협력하고 있다. 특수목적회사(SPC)인 제주김녕풍력발전의 주주는 제주홀딩스(60%)와 GS EPS(40%)다. 이 시설은 GS건설과 제주도 업체(토목, 전기 등)가 시공을 맡았고, 2014년 3월 착공돼 지난해 5월 완공됐다.
이외에도 제주도는 탐라, 한림, 대정 등에서 다양한 해상풍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탐라해상풍력은 포스코에너지와 두산중공업이 공동 출자해 진행하는 사업으로, 두산중공업의 3메가와트(MW) 풍력시스템 10기가 들어선다.
이윤덕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 교수는 “자동차, 태양광·풍력발전 등의 제품은 사람의 안전과 기술개발에 투자가 많이 필요한 만큼 성능, 내구성, 품질 등에서 신뢰도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주도와 같은 섬지역의 경우 외부의 돌발요인을 차단할 수 있어 시험·인증장비의 제어가 쉽기 때문에 최적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20조원 수준의 경제·환경 파급효과 ‘기대’
제주도가 추진 중인 탄소가 없는 섬 전략은 지역 경제 활성화, 온실가스 감축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제주특별시도는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등 2차 산업 확장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2030년 기준 19조3000억원의 생산·부가가치와 일자리 5만개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연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아차의 가솔린 소형차 레이의 경우 1년 2만km 주행시 280만원의 유류비가 발생한다. 하지만 전기차인 레이EV를 이용하면 연간 2만km 전기충전비는 36만원이어서 연료비 244만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 제주지역 연관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부품소재업, 연구기관, 배터리 활용, 금융사업 등 다양한 연관 산업군이 형성될 수 있다.
전기차 보급은 환경 보호와도 직결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계획대로 2020년 전기보급률 30%를 달성하면 매년 30만800톤의 이산화탄소 저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미영 제주특별자치도 에너지산업과 사무관은 “테스트베드 전략을 활용해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수행할 경우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재와 비교해 90% 이상 사라질 것”이라며 “이는 소나무 2000만 그루를 심는 효과로 연료비, 탄소배출권 구입비 등 개인과 기업, 정부에 수십조원의 경제·연관효과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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